-
우리 시대의 거장 황석영이 몸으로 써내려간 자전(自傳) 『수인』이 6월항쟁 30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아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현대사의 숱한 굴곡과 파란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겪어온 그가 자신이 지나온 파란만장한 삶, 자유를 위해 시대의 억압과 맞서온 불꽃같은 여정을 생생한 필치로 증언한다.
파란만장 황석영, 당대의 수인이 출감한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황석영이 몸으로 써내려간 숨가쁜 기록
우리 시대의 거장 황석영이 몸으로 써내려간 자전(自傳) 『수인』이 6월항쟁 30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아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현대사의 숱한 굴곡과 파란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겪어온 그가 자신이 지나온 파란만장한 삶, 자유를 위해 시대의 억압과 맞서온 불꽃같은 여정을 생생한 필치로 증언한다.
2004년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분량이 원고지 4천 장이었는데, 당시 연재는 어린 시절부터 연대순으로 이어지다가 1976년 전라도 해남으로 이주하는 데서 중단되었다. 이번에 새로 쓴 분량이 2천 장이다. 그 이후의 파란만장이 담겼다. 1980년 광주항쟁과 1989년의 방북과 망명, 투옥, 그야말로 격렬한 삶이 온전히 담긴 2천 장을 쓰며 작가는 자주 아파서 병원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한 6천 장에서 다시 2천 장을 덜어내는 작업을 했다. 덜어낸 2천 장은 대부분 연재했던 분량에서였다. 그렇게 총 4천 장의 원고가 완성되었다.
만주 장춘에서 출생한 그는 평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어머니 등에 업혀 월남, 어린 시절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고 4·19의 소용돌이에서 소중한 친구를 잃은 뒤 젊은 날을 방황으로 보내다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유신독재의 어둠에 맞서 동료들과 함께 저항하다 5·18 광주항쟁을 맞았고,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1989년, 분단된 한반도의 금기를 깨고 방북을 결행해 공고한 분단체제에 커다란 충격을 던진다. 사 년의 망명을 거쳐 귀국 후 수감, 그리고 오 년간의 엄혹한 수인생활을 겪어내기까지, 숨가쁘게 흘러온 작가 황석영의 생애가 이 책에 오롯이 담겼다.
온몸으로 금기를 깨뜨린 단독군장의 행로,
월남과 방북, 망명과 투옥,
광주항쟁과 6월항쟁의 최전선에 선 파르티잔의 삶
『수인』은 1993년, 작가가 방북과 뒤이은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안기부에 끌려가 수사관들에게 취조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이야기는 감옥 안에서 보낸 오 년의 시간과, 유년부터 망명 시절까지의 생애라는 두 시간대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그리고 감옥 바깥의 시간은 다시 순서를 달리해, 1985년 광주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출판한 후 처음으로 한반도를 벗어나 바깥 세계를 경험한 뒤 민주화운동과 방북, 망명, 구속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먼저 이야기한 다음, 시간을 거슬러 가족과 함께 월남한 다섯 살 무렵으로 돌아가 한국전쟁과 4·19, 베트남전쟁을 겪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5·18 광주항쟁을 맞기까지의 기억을 되짚어나간다.
감옥 안의 시간과 바깥의 시간을 나누는 이러한 구성으로 인해 『수인』은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작가가 좁은 감방 안에서 지금까지의 생애를 간절히 더듬어보는 듯도 하고, 또는 현실의 시간 가운데로 불쑥불쑥 감옥에서의 장면들이 꿈처럼 끼어드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이를 통해 작가의 삶은 단순히 시간순으로 나열되는 대신 방북과 망명, 투옥이라는 결정적 계기들을 중심으로 재배치되어 더 깊은 의미를 얻는다.
그가 시대의 ‘수인’이 되어 자유를 박탈당해야 했던 것은 완강한 금기의 벽 앞에 스스로 몸을 던져 그것을 깨뜨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의 목소리로 증언된 그의 삶의 이력을 통해 우리는 그의 결단이 돌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마땅히 그래야 했던 역사적, 문학적 필연성을 지닌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냉전이 해체되고 얼핏 까마득히 다른 세상으로 접어든 듯 보이는 지금의 시대에도 그 필연성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음을 이해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의 삶의 커다란 분수령이 된 오 년간의 수인의 삶. 작가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시대의 감옥 안에서 그는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스스로 시대를 짊어지고자 했던 작가에게 감옥이란 무엇이며, 경계를 넘어서고자 한 작가의 자유로운 정신을 가두고자 한 시대란 또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말한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이 책의 제목이 ‘수인(囚人)’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라고. 돌이켜보면 그가 온몸으로 싸워 지켜낸 한줌 빛의 자유는 그래서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씨앗이 되었는가.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문학이라는 집이었다.”
『수인』은 한 작가의 자전적 기록인 동시에 개인의 역사를 뛰어넘는 한 시대의 문학적 증언이다. 이 안에서 우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현대사의 도도한 물결과, 그 속에서 일어서고 또 스러져간 인간 군상, 그리고 그 모두와 함께하고자 했던 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과 결단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입석 부근」을 시작으로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손님』 등 한국문학사에 빛나는 걸작들의 바탕이 된 생생한 체험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어머니의 삶부터 삶의 갈피마다 그가 만나고 함께한 수많은 인연들, 그리고 운명에 이끌리듯 시대의 한복판으로 주저없이 걸어들어간 그의 행보, 한 사람의 작가와 우리의 현대사가 얽혀 만들어내는 곡진한 사연들의 무늬가 촘촘하다.
그가 겪어온 우리 역사의 결정적 장면들, 그가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나온 시대를 세밀하게 그려낸 기록화와도 같다. 거기에는 잘 알려진 정치인이나 재야인사들, 문인들과의 일화는 물론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과 사연이 다채롭게 그려져 있다. 월남한 가족 친지의 고단한 삶, 한국전쟁을 전후한 영등포의 풍경과 사람들, 역사의 시기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 떠돌이 노동자, 베트남에서 덧없이 희생된 목숨들, 열악한 조건에 시달리는 공단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 이들이 그의 많은 작품들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 잊을 수 없는 이야기로 남았음은 우리가 잘 아는 바다. 또 서울구치소 수감 시기 마주친 정치인이나 여러 유명 인사들의 뒷이야기나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자들의 일화, 또 다른 수인들과의 생활에 얽힌 이야기 등도 그 하나하나가 소설작품을 읽는 것과 다름없는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수인』은 한 사람이 몸으로 겪어온 삶이 서사화됨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이 되는 광경을 보여준다. 본래 ‘자전’이 문학의 한 양식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작가 황석영의 삶을 작가 황석영의 필치로 갈무리해낸 결과일 것이다. 『수인』을 통해 우리는 언제나 시대의 가장 첨예한 현장 속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은 작가의 행동이 그의 문학을 낳고, 또한 그의 문학이 곧 그의 행동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온 내력을 볼 수 있다. 시대현실과 삶과 문학이 서로 이만큼 밀착하는 일이 또 가능할까. 그러니 황석영이라는 이름, 또는 『수인』이라는 작품은 곧 압축된 한국 근현대사이자 한국문학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이기도 하다. 그의 삶이 곧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문학일 것이다.
★
오 년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지도 무려 이십 년째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한 해도 편안했던 적이 없지만 망명과 투옥의 기간은 수년 전에 고희를 넘긴 생애 속에서 그저 잠깐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이 책의 제목이 ‘수인(囚人)’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 _‘에필로그’에서
■ 책 속에서
국가보안법은 침대의 길이와 폭에 맞지 않는 사람의 몸을 자르거나 늘일 수 있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가혹한 형틀이다.(1권 16쪽)
바깥세상에서 나 자신과 코리아의 부재는 속수무책이었지만 그저 징징대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이제 막 벽에 조그만 균열을 내고 너른 세계로 첫걸음을 내딛는 참이었다. 그러나 벽 틈을 빠져나오자마자 이 세계는 북한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만 도달하게 되어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1권 47쪽)
‘그러면 당신은 조국의 분단을 그냥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살아갈 것인가?’ 나는 그 질문을 오랫동안 되새겼다. (…) 나는 한국전쟁 당시 남과 북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이 경계의 금기를 깨뜨렸다가 갇히고 처형당한 사람들, 그리고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다 죽은 시민들을 생각했다. 이 경계를 어떻게 해서든 넘어서지 않으면 나는 더이상 작가도 뭣도 아니었다.(1권 79쪽)
나는 호텔방에 앉아서도 나 자신이 분리되어 스스로의 행동을 남처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나는 이 느낌이 반세기 동안 분단된 채 살아오면서 익숙해 있던 금기를 깨뜨리면서 일어난 일종의 가벼운 편집증이라고 생각했다.(1권 174~175쪽)
미지의 것 때문에 금기의 억압이 있다면 작가는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그것을 위반하고라도 확인해야만 한다. 국경, 장벽, 철조망 너머로 날아오고 날아가는 철새들을 본 적이 있다면 생명의 본성과 사람이 정해놓은 잡다한 규정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게 될 것이다.(1권 275쪽)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문학이라는 집이었다. 세상의 뒤안길을 떠돌며 노심초사하다가도 퍼뜩 정신이 들면 나는 늘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1권 365쪽)
어찌 보면 다섯 살 때 어머니의 등에 업혀 38선을 넘는 순간부터 나는 돌아갈 집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내가 유난스러울 정도로 집에 집착하는 것도 정처를 잃어버린 데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1권 385쪽)
어른들에게는 가혹한 세월이라지만 아이들은 겉보기에 별로 무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배고프거나 아플 때, 슬플 때 잠깐 울고 나면 그뿐이다. 얼룩진 눈시울을 쓱 닦고 돌아서면 생존 그 자체가 활기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뿐일까. 마치 모르는 사이에 동상에 걸리는 것처럼 성장해가면서 지난 상처들이 문득문득 못 견디게 가려워지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에 허우적대는 것을 나는 종종 보아왔다.(1권 430쪽)
어느 누구든 경계선을 넘으면 안 되었다. 밖에서나 안에서나. 징역에는 누구에게나 고비가 있게 마련이다. 처음에 형을 받고 출발할 때, 그리고 교도소에서 독방에 갇혀 삼 년에서 사 년을 넘길 무렵, 다시 구 년에서 십 년째 접어들 때, 마누라가 떠날 때, 가족들,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아이가 아프거나 무슨 일을 당했을 때, 증오하던 담당이 다시 배치되었을 때, 억울하게 징벌을 먹었을 때, 뒷수갑 차고 족쇄 묶여 창도 없는 캄캄한 먹방에서 엎드려 입으로 개밥을 먹을 때, 그런 때에 그는 삶의 이쪽 경계를 넘어간다. 도저히 못 견딘 혼이 몸이라는 공간을 떠나 혼자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2권 174~175쪽)
내게는 군대나 감옥이나 정서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군대는 죄가 있건 없건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이라면 무조건 의무적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 다르겠지만 규율과 통제 속에서 일정 기간 보내야 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그 역시 아름다운 청춘을 유폐시키는 감옥이다.(2권 176쪽)
목격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기만 했으니까 모든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세계에 널린 참상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목격하기만 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나는 전장에서 현상계에는 귀신이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제대하여 민간인이 되었을 때, 그리고 먼 훗날 신천학살 사건에 관한 소설 『손님』을 쓸 때 당시의 목격자들과 만나 회상을 취재하면서 귀신이 있다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바로 ‘헛것’은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기억과 가책이면서 우리 스스로 일상에서 지워버린 또다른 역사의 얼굴이었던 것이다.(2권 217쪽)
찢겨진 우리 시대의 운명에 관하여 손가락을 호호 불며 원고지 칸에다 한 글자씩 쓰고 있노라면 건너편 선운각 계곡에서는 새벽까지 밴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렴풋이 동이 터올 때 남포의 불을 껐다. 어둠 가운데 앉아 있자니 처마끝에서 깨어난 새가 가냘프게 우짖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어느 깊은 산에서 날아왔을까. 어떤 떠돌이새가 이 가난한 처마밑에 둥지를 틀었나. 문득 설산에 산다는 전설 속의 새가 아닌지 엉뚱한 상상을 했다. 밤이 올 적마다 추위에 떨면서, 날이 밝으면 둥지를 짓겠다고 울다가도 정작 아침이 되면 모두 잊어버린다는 새. 무상한 몸에 집 지어 무엇하리, 하고는 밤이 오면 다시 후회한다는 한고조(寒苦鳥).(2권 2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