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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사도세자의 고백

사도세자의 고백
  • 저자이덕일
  • 출판사푸른역사
  • 출판년1995-09-01
  • 공급사(주)북토피아 (2003-09-02)
  • 지원단말기PC/전용단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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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일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이유가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것처럼 정신병 때문이라면, 아버지 영조는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였을 것이지 참담하게 뒤주에 가두어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정신병의 이유만으로 자식을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아버지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또한 비행 때문이라면 태종 이방원이 그랬던 것처럼 세자를 폐하여 지방으로 내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 의문점을 갖게 한다.





    사도세자가 뒤주속에 갇힌 것은 영종 38년(1762) 윤5월 13일, 그리고 세상을 떠난것은 윤5월 21일이니, 사도세자는 무려 여드레 동안이나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시음하며 죽어갔다. 사도세자의 사건을 거론하는 것이 금기된 탓에 기록을 찾지 못했지만 세자빈 홍씨의 <한중록>에 조금이나마 기록을 볼 수있었다.





    <한중록>에는 정신병이 초래한 비극을 통탄하는 한 맺힌 부인의 기록은 후세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핵심내용은 성격이상자인 영조와 정신이상자인 사도세자의 부딪침이 비극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난 우연한 계기로 온양에 있는 영괴대(靈槐臺)를 보았다. 그것은 사도세자가 온양의 온궁을 왔던 것을 기념하여 정조가 세운것이다. 의문이 들어 <영조실록>의 기록을 살폈본 후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곳엔 사도세자가 정진이상자가 아닌 성군(聖君)의 자질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기록들이 있었다.

    진실을 찾기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록을 뒤져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10년 이상 훈련해온 역사학의 전문적인 해석 기법을 동원하였으며, 사도세자가 소론과 결탁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조재호 사건을 재조명할 수 있었다.



    이 글을 통해 사도세자의 굴절된 모습이 조금이라도 바로 잡아지고, 한 인간의 잘못된 모습을 되찾게 된다면 보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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