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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1790

1790
  • 저자주명철
  • 출판사여문책
  • 출판년2016-11-11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1-15)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PC는 추후 지원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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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대에까지 밀어닥친 혁명과 반혁명의 갈등



    “민주적인 군대는 있어도 군대 안에 민주주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군대라는 곳은 철저히 명령과 복종을 근간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공간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런데 혁명 원년인 1789년보다 혁명이 좀더 뿌리를 깊게 내린 1790년에 혁명의 열기가 급기야 ‘왕의 군대’에까지 밀어닥쳤다.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4권은 낭시에서 일어난 군사반란을 집중적으로 다룬다(1791년의 상황을 자세히 다룰 제5~6권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제3권에서 살펴본 ‘전국연맹제’는 시작부터 잔치가 분명했다. 더욱이 프랑스 왕국이 생긴 뒤 그런 종류의 잔치는 처음이었으며 분명히 국민화합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1790년은 화합보다는 극복해야 할 불화가 훨씬 더 많은 해였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낭시에서 일어난 군사반란이었다. 여전히 파리와 지방에서는 빵값과 생활필수품 공급문제 때문에 민중이 봉기하여 크고 작은 소요사태를 일으켰고, 가톨릭교도들과 개신교도들의 갈등은 결국 피를 불러왔으며, 국경지대에서는 외국 군대가 침략할까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게다가 왕당파는 국내외에서 계속 일을 꾸며 혁명의 성과를 지우려 하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 국회 안에는 의원들이나 방청객이 종종 무기를 소지한 채 드나들고 있었고 급기야 의원들끼리 결투를 벌이는 상황이 연출되고는 했다. 이처럼 프랑스 전역이 혼란으로 들끓는 와중에 민간인 클럽에 드나들며 혁명의 열기에 휩쓸린 병사들은 위원회를 만들어 단체행동을 하고 장교들이 운영하던 군자금을 스스로 관리하겠다고 나섰다가 결국 군사반란으로 문제를 확대했던 것이다. 이렇듯 제4권에서는 왕의 군대와 국민의 군대 사이에 첨예하게 불거진 혁명과 반혁명의 갈등을 국내외적 요인과 여론의 양상, 국회의원들의 법 제정 활동 등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거인은 우리가 무릎을 꿇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똑바로 서자!”



    이 문장은 혁명기의 대표적 신문 『파리의 혁명』의 발행인이었던 프뤼돔이 신문 제호 밑에 쓴 문구로, 신분사회를 무너뜨리고 평등을 기반으로 새로운 법질서를 확립해가던 당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789년에는 혁명의 흐름을 지지하는 신문과 반대하는 신문이 함께 나왔다. 온건한 신문은 대체로 혁명의 흐름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당시 진행되던 혁명을 반대하는 신문은 크게 두 방향으로 갈라졌다. 극좌파 신문은 아직 혁명다운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더 근본적이고 급진적으로 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파는 벌써부터 혁명이 희생을 너무 많이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극좌파의 신문은 혁명이 지지부진하다고 하면서 조급해했고, 우파의 신문은 당시 보수적인 사람들(귀족이나 종교인처럼 구체제의 특권층이나 농민처럼 구체제의 희생자)처럼 변화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나 새로운 정치적 조건과 법은 새로운 갈등을 낳게 마련이다. 더구나 오랜 세월 이어져온 특권을 폐지하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혁명의 과정에서 폭력은 좌우를 떠나 거의 일상적 차원의 일이었다. 급격한 변화란 안정된 체제에 대한 폭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태초에 반혁명이 있었다.”



    비교적 단순한 사회정치적·경제적 갈등을 넘어 대부분 폭력과 피의 대가까지 수반하는 혁명의 과정은 그만큼 복잡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일치단결해서 혁명에 참여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과연 그것을 혁명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반혁명은 혁명보다 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기존질서 속에서 특권을 누리던 사람들은 조그만 변화에도 반발하며 더욱이 혁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반혁명세력,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수구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태초에 반혁명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그것을 혁명이라 했다. 그때부터 혁명이 아닌 것, 혁명에 저항하는 기존의 것을 반혁명이라 불렀다. 마치 새 체제가 생기면서 이미 존재하던 체제를 구체제라 부르듯이.”

    혁명이 단순한 사건이고, 반혁명은 단지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이라면 비교적 실체를 파악하고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어디 정치적 문제뿐이랴. 또 혁명기의 모든 사건이 작용과 반작용의 연쇄라면 차라리 혁명의 흐름을 이해하기 쉬울 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서 훨씬 복잡했다. 파리에서 일어난 일로 자극을 받아 다른 지방에서 그것을 본받고 모방하여 일어나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30~31쪽)



    왕의 군대 VS 국민의 군대



    우리가 흔히 ‘장점’이라는 뜻으로 쓰는 ‘메리트merite’라는 단어는 구체제 프랑스 군대의 장교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어다. 이 말은 사람의 한 부분으로 ‘얻다’ 또는 상으로 ‘받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mererer의 명사형meritum에서 나온 말로서 ‘소득, 봉급’, ‘특정인에 대한 (좋거나 나쁜) 봉사’, ‘보상이나 벌을 받을 만한 행위, 행실’을 뜻했다. 로마제국 후기 라틴어에서 이 말은 ‘가치’라는 긍정적 의미를 얻었다. 1611년에 이 말에는 특정 작품이나 예술품의 뛰어난 특성을 모두 아우르는 ‘장점’이라는 뜻이 더해졌다. 18세기에는 봉사에 대한 보상으로 주는 훈장ordre de merite(공로 훈장)의 이름에도 쓰였다. 구체제의 신분사회에서는 이 말을 개인보다는 핏줄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귀족으로 태어나면서 몸의 한 부분으로 가지게 되는 ‘자질’ 또는 ‘능력’인 동시에 왕에게 봉사하는 귀족의 본분에 대한 대가로 신분질서와 특히 군에서 높은 지위를 유지하게 해주는 ‘보상’이다. 그 시대 귀족은 ‘능력’을 대물림해주었다. 그리하여 1788년 귀족의 95퍼센트가 군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했으며 1789년에는 장교 1만 3,500명의 90퍼센트가 귀족이었다.

    이러한 ‘왕의 군대’는 1789년 혁명이 일어나면서 ‘국민의 군대’인 국민방위군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 했고, 혁명이 더욱 과격해지면서 국내 질서뿐 아니라 국제 질서가 변화하는 데도 보조를 맞춰야 했다. ‘왕의 군대’에도 혁명의 바람이 불었고 군대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군사반란 이 일어나기도 했다. 혁명이 일어난 뒤 정규군 부대인 ‘왕의 군대’의 병사와 부사관들이 참모부의 명령을 듣지 않는 사태가 빈번히 일어났다. 이처럼 군대에도 혁명/반혁명의 구도가 형성되었고 그러한 구도를 이용해 반란을 선동하거나 군대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마저 있었다. 한마디로 군 내부도 극심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었던 것이다.



    낭시 사태를 불러온 여론 전쟁



    혁명이 일어나자 급격히 군대 내의 기강이 해이해졌다. 대다수가 귀족 출신인 장교들은 혁명의 상징인 삼색 표식을 멸시했으며 종종 가장 치욕적인 벌인 ‘곤틀릿 형벌’(많게는 50명씩 양쪽에 줄지어 선 병사들이 몽둥이나 주먹 또는 멜빵으로 때리는 사이를 걸어가게 하는 벌)을 가하는 등 병사들을 푸대접하기 일쑤였다. 당연히 병사들은 이런 장교들에게 평소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차츰 장교들과 병사들 간의 마찰이 잦아졌다. 급기야 군내 내에 애국자와 귀족주의자(혁명과 반혁명)의 구도가 형성된 가운데 병사들이 장교들의 부대 운영자금 횡령문제를 따지고 들면서 낭시 사태가 본격화되었다. 대대로 특권을 누려오던 장교들 입장에서는 병사들을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새로운 법 조항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이를 둘러싼 여론 전쟁이 낭시에서 일어난 모든 불행의 원인이었다. 대부분의 주민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몇몇 저명한 시민은 자신들이 겪을 손실을 전혀 계산하지 않았고 오직 국가의 행복만 생각하면서 국회가 제정한 법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법은 사실상 오랫동안 억눌렸던 비참한 계급에게 유리했다. 이들은 그 법에 찬동했고, 그 법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대립했다. 낭시의 주둔군도 이런 분열과 무관할 수 없었고, 전국을 휩쓸던 혼란의 분위기에 말려들었다. 어쩌면 조기에 잘 봉합했을 수도 있는 사태를 제때, 제대로 진정시키지 못한 시정부의 무능까지 더해져 낭시 사태는 최악의 참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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